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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중생의 교리 | 그리스도인의바른신앙 김명규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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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바른신앙

11장/중생의 교리

 

앞 장에서는 주로 구속주와 그의 역사와 인류에게 적용된 구속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었으나 본 장에서는 위대한 구속을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구속(구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단계로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생 즉 중생(Regeneration)과 성령의 세례 곧 성결(성화: Entire sanctification)이며, 몸의 부활인 영화(Glorification)이다.

 

본 장에서 다루려는 중생은 은혜의 첫 번째 역사로써 개인의 경험에 있게 되는 세 가지 큰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즉 변화된 기록으로 칭의와, 본성이 바뀐 것으로 중생, 변화된 관계로서의 양자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살아있는 자 만이 입양될 수 있으니 중생이 양자에 앞서고, 기록이 바뀐 자 만이 중생될 수 있으니 칭의가 중생의 앞서는 것이다. 경험적으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것인데, 구도자는 성령의 증거로 알게 된다.

 

 1. 칭의(Justification)

의롭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법의 과정에 의해서 바르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에 이 말씀이 나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신 25:1)

이 말씀에서 분명한 것은 재판장이 사람들의 본성에 어떤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고, 법에 비추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칭의의 방법은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대하신 관계에 나와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 하였다.

곧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므로 아무도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을 받을 자가 있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위대한 분께서는 의롭다함을 받을 자들의 의가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그들을 의롭다고 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롬 3:26)를 의롭다 하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 본성이 의롭게는 못 되었어도 법에 의해서는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분명한 즉각적인 순간이 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즉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틀렸지만 옳은 자로 받으시고 이 칭의를 기초로 하여 그에게 신생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양자를 삼으시는 것이다.

 

1)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믿음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말하지만 새 생명이 그들 속에 있음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구원된 것을 느끼기를 원하고 느낀 다음 구원받은 것으로 믿는 이들이 있다.

 

야고보는 이런 거짓 믿음을 경고하고 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약 2:20)

 

여기서 행함이란 율법의 일들이 아니다. 야고보가 강조한 진리는 다음과 같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

 

① 아브라함의 경우

야고보는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라 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린 것은 율법의 일이 아니요, 그 행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 것이다.

 

② 라합의 경우

야고보는 라합의 경우를 들어 믿음과 행함에 의한 칭의의 개념을 말해주고 있다. 라합의 행위를 살펴보자. 그녀는 여리고에 살았던 죄인이었고, 모든 사람과 함께 죽기로 정죄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탐꾼 둘을 묵게 하고 생명을 찾던 왕을 피해 도망하도록 도왔다. 이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요, 정탐꾼들이 일러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라합이 믿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탐꾼들을 달아 내리운 창문에 라합은 약속대로 붉은 줄을 달았다. 창문에 붉은 줄을 단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했다고 하여 도덕적으로 조금 나아졌다거나 더 나빠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일 그녀가 창문에 붉은 줄을 달아맨다면 그의 가족들이 구원받게 되리라는 정탐꾼들의 약속을 그녀가 믿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리고가 공포에 싸이고 이스라엘의 행군이 계속되는 동안 그녀의 믿음은 그 줄이 창문에 매여 있도록 했으며, 안전을 느꼈다. 그녀가 안전을 느낀 것은 도덕적으로 나아진 느낌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행동이나 행위에서 그 믿음을 보이는 일이 있게 된다. 그것이 없는 것은 주께서 자기를 구원치 못하며 자신이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고백이 되는 것이요, 주의 응답을 거절하는 불신앙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험되어져야 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구도자들과 "시험 결혼"을 하시지 않으신다. 좋든 나쁘든 구도자들이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분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라합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일 정탐꾼들이 말과 약속이 참된 것이 아니었다면 라합은 얼마나 어리석은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까! 만일 이스라엘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여리고의 왕의 손에 라합은 틀림없이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라합은 믿는 바에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구도자들도 그래야만 한다. 그와 같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으로 죽은 것이다.

 

2) 칭의의 완성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에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께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지게된 모든 책임을 취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까닭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의로운 자로 여기시는 것이다.

 

① 과거에 대한 용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 과거의 모든 죄들을 완전히 용서하시는 것이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9)

 

② 현재에는 의롭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과거 죄들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의로운 자로 받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의 용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소극적인 면에서 죄들의 형벌을 취소하심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적극적인 면에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서게 하신 것이다.

 

2. 중생(거듭남: Regeneration)

칭의의 역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행동이시고, 중생은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칭의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역사인데, 그의 속죄의 공로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어 하늘에 있는 죄의 기록이 도말 되는 것이다. 비록 순간적이라 할지라도 이 도말이 먼저 있어야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중생시키게 된다.

 

1) 신생(중생)의 필요성

구원받기 위해 거듭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죄를 알기 전에 죽은 유아들에게는 이 경험이 없어도 되지만, 다른 이들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받아야할 경험인 것이다.

 

① 예수님의 선언

니고데모와 말씀하실 때 "너는 거듭나야만 한다."(요3:7)라고 선언하셨다.

 

② 중생이 없이는 영적으로 죽어 있음으로 중생이 필요하다.

아담의 죄의 형벌은 사망이었는데 그의 죄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됐다"(롬5:12)고 말씀되어 있다. 에베소서 2:1에 "중생한 자들이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자이었다"고 나와 있다.

 

③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2) 신생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신생은 사람이 자신이 어떤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채운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의역사이고, 하나님 홀로 조건들을 채웠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실 재판장이시다.

 

① 하나님의 뜻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② 하나님의 긍휼(자비)

거듭나게 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긍휼 즉 사랑에 달린 것이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4-5)

 

③ 하나님의 수단

사람 안에 어떻게 신생이 있게 하시는가를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일러 주셨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④ 한 수단으로써의 설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생자들(자녀들)을 쓰셔서 다른 이들의 중생(신생)을 돕게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설득과 설명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지만 순수하고도 단순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결과가 있게 한다.

 

⑤ 구하는 자가 할 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사람이 그의 마음에서 아는 모든 죄들을 진실되이 고백하고 버리며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까닭에 그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며 신생이 있게 하신다.

 

3. 양자(Adoption)

논리적으로 칭의 다음에 중생이 있듯이 신생 뒤에 양자됨이 있게 된다.

첫째는 변화된 기록이 있고, 변화된 본성이 있으며, 다음에 하나님과의 변화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셋의 복합이 마음 속에 첫 번째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양자됨에는 성령의 증거와 자신의 영의 증거가 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

경험적인 순서로는 성령의 증거가 있고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가 있는 것이다.

 

1)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

구원을 위해 해야만 할 것을 자신이 한 것과 자신의 생애가 성경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생애와 일치하는 것과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열매가 자랄 시간과 빛이 증가하는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우리 자신의 영의 증거를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알게 하는 즉각적인 확신을 주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사랑에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알 수 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후서 1:12에서 말한 "양심의 증거"로써 구원에 대한 자신의 영의 증거를 들 수 있는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과 계속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데 대한 증거이다.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2) 성령의 증거

하나님과 화목케 된 확실한 증거로써 성령의 증거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조건을 지킨 까닭에 약속대로 용서하여 주셨고, 구원시켜 주신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좋은 길은 되나 성령의 명확한 증거가 있기까지 추정은 결코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증거를 받는 길이 죄의 고백과, 죄를 버림과, 믿는 것이나 성령의 증거가 없다면 흠이 되어 구도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우리들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추론적인 과정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모든 것과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찰하시는"(고전 2:10) 성령께서는 성부께서 빚을 언제 지우셨는가를 아시고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성령의 복된 사실의 전달이 아닌 것은 성령을 슬프게 하며 우리를 안개 가운데 있게 한다.

 

웨슬레(Wesley)는 성령의 증거를 "영혼에 대한 내적 인상으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셨으며 내 죄를 도말 하셨고, 나는 하나님과 화목케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 영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예수님께서 본보이시고 말씀하신 대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아야 한다(마3:16, 마28:19, 행 8:36).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행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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